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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림으로서의 철학

...의 전신 (2021)

탐미주의와 사실주의의 빛이 교차하는 평원에서

-‘침묵’의 입술을 틔우기. 마르그리트 뒤라스 <<연인>>을 향한 수필, 2021.02.26

 

 

“내가 열중하는 건 표현이 가능할 때 말할 수 있는 것들과, 생각은 하면서도 말하지 않는 것들이에요.”

라고, 뒤라스는 발음한다. 이때 ‘말한다’는 표현을 쓰지 않은 것은 이 문장이 뒤라스의 작품 세계를 ‘설명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녀의 작업은, 인터뷰 중인 순간에도, 마음이 당위로 여기는 것들을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읊어주는 일이다. 시각장애인이 점자를 훑어 읽듯이. 뒤라스의 말들은 설명이라기보다 오히려 ‘불러주기’, ‘받아쓰기’ 혹은 ‘일러주기’와 가깝다.

 

우리 삶은 하나의 강물이라고, 나는 가끔 불교식으로 생각해 보곤 했다. 나의 모든 일과와 몸짓, 언어, 관계, 행실과 과오, 그리고 관찰되거나 스친 수많은 타자들까지, 메콩 강을 나룻배로 건너던 소녀의 영상(p.30)처럼 “현기증 나는” 강물의 힘에 이끌려 다만 떠내려간다. 거기서 내가 건져 올릴 수 있는 인상들의 지분을 생각하면 천문학자처럼 무력해지는 도리밖에 없는 듯하다.

 

그것은 갑자기 들이닥친다. 늦은 오후에, 특히 건기에, 어머니는 집 안을 구석구석 닦기 시작한다. (...) 갑자기 호수, 강가의 들판, 개울, 해변처럼 변해 버린 이 집에서 우리도 행복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모두가, 어머니도 그렇게 생각한다.

제일 먼저 기억나는 것은 밑의 두 아이들, 딸과 작은아들이다. 문득 그들은 웃음을 그치고 땅거미가 내리는 정원으로 간다. (p.75-76)

 

<<연인>>에는 1. 불분명한 지시대명사와 인칭대명사, 필수 성분이 생략된 문장들, 2. 연결되지 않는 이미지, 갑작스러운 비유들이 허다하다. (첫 정사 장면의 ‘형체가 없는 바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독자는 소녀가 살던 사이공의 풍경을 하나의 정돈된 파노라마로 그리기 힘들다. 다만 기억의 파편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석양빛 테라스와 콜랑의 독신자 아파트, 왈츠가 울리는 여객선 등이 몇 장의 사진처럼 나뒹굴 뿐이다.) 3. 더불어 문단 간 호흡이 느슨하거나 서로 유리되어 있다는 느낌마저 받을 수 있다. (베티 페르낭데즈, 마리클로드 카펜터 묘사 부분) 다르게 말하면 ‘의식의 흐름’ 그 자체이다.

 

삶과 의식이 불가분하고 의식이 시간의 힘에 이끌려 떠내려가는 급속한 물살이라면, 뒤라스는 늙어버린 자신과 아이처럼 순수하여 미쳐버린 어머니, 하얗고 조그만 별처럼 불멸하는 작은오빠와 이들을 짓누르는 무시무시한 그림자- 큰오빠에 대하여, 이들의 슬픈 역학과 수많은 뉘앙스, 예언된 미래, 사랑과 증오를 어떻게 붙잡아 ‘서술’할 것인가. 그녀는 다소간 무력하다. (p.35, ‘나는 닫힌 문 앞에서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하지만 그녀는 쓴다. “모든 것이 거기에 있고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나 “그것”이, “모든 것이 내 눈 안에 들어오”기 때문에(p.29), 모든 “생생하고 신선한 상처”가 “빗나간 심장의 고동”(p.61)을 만들고 그것이 충동질하는 한, 그녀는 써야 한다. 이것을, 어머니의 버팀목이자 연인, 아들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않은 채 권력에만 취한 큰오빠에 대한 살인 충동(타나토스)이 억압된 데 따른 승화라느니 하며 정신분석적으로 다룰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승화 형태가 왜 하필 글인가에 대해서는 말해주는 바가 없다. (글로써) 삶을 표현해내는 것, 뒤라스에게 그것은 다만

 

자연(自然)이자, 마음의 당위(當爲)일 뿐이다.

 

그녀는 문장들로 생 특히 유년의 장면, 영상들이 침묵하면서 말해주는 “사실, 감정, 사건”들을 파헤치는데 그것은 “강한 자의식을 가지고 한 것도, 그렇다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내버려 둔 것도 아닌”상태에서 이루어진다. 아직 표현되지 않은 원시의 글은 마음속에 이미 스스로 존재하고 뒤라스는 온갖 끊긴 문장들, 어떤 성분들이 부서지거나 부재하는 문장들, 혹은 느슨하게 얽히거나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 수 없는 단락들, 비유들을 통하여 더듬거리며 의식의 강물을 구현해 낸다. 여기에서 자연과 당위라는 상충하는 개념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한다. 뒤라스의 글은 의식 속 수많은 장면과 뉘앙스의 불러주기, 받아쓰기라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하면서 꽃의 피어남처럼 완벽하게 구현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당위적이다. 개중에는 강렬한 예감에 사로잡힌 예언적인 논조도, 그저 건조한 상황 묘사도, 완곡하거나 직접적인 폭력도, 너무 희미하거나 내밀하여 포착하기 어려운 감각도, 혹은 직설적으로 표현된 생각과 느낌도 있다. 짧게 말하면 늘 갑자기 들이닥치곤 하는 그녀의 생이 있다. 그녀 자신의 몸 역시 강물에 맡겨 쓸려 내려가면, 역설적이지만 광기 속에 살았던 어린 어머니처럼 행복할 수 있으리라는 예감은 도처에 있다. 이를테면 콜랑의 중국인 남자와 ‘사랑을 나누면서’ 그녀는 강물이 멎는 바다로 빨려들기도 하고 그녀 자신이 바다로 확장되기도 한다. 하지만 지극한 향락 속에서도 ‘생생한 상처’가 그녀를 깨운다. 깨워 땅거미가 지는 정원으로 가 펜을 들고 그녀 자신을 쓰게 한다. 언어의 한계인지 인간의 한계인지, 글은 언제나 서투르고 분명한 것 없이 뿌옇게 열병에 걸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그 안에 있다. “표현이 가능할 때 말할 수 있는 것들과, 생각은 하면서도 말하지 않는 것들.” 

 

 

*

말더듬이였던 당신

마음을 따라가지 못한 말들이 몸을 떠도는 거라는 소견이 있었다

함께 받은 처방은

구름의 운율에 따라 문장 읽기를 하라는 것

혹은 가슴에 귀를 대고 기다려주기 (이은규, <청진의 기억> 일부)

 

삶이 침묵하는 모든 것을 쓴다는 것, 굳이 모든 것까지가 아니더라도 마음을 가만히 ‘청진’하며 수없는 기다림(.)과 지연(,), 자연스러운 운율로 ‘침묵의 말을 한다는 것’. 침묵의 말을 한다는 것은 절대적인 사랑을 꿈꾸는 것만큼이나 낭만적이고, 좌절의 슬픔이 예비되어 있으며 나의 온 생애를 다 불태우기를 종용하는 일이다. 아마도 하나 짚어두어야 할 것은 이 소설의 이름이 <<연인>>이고 주인공은 마지막 순간 확신할 수 없는 사랑의 무게에 울며, 콜랑의 남자는 감히 후회하지 않을 것과 죽는 순간까지 그녀를 사랑함을 확언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절대적인 사랑을 확신하는 이 너무나 유약하고 위태로운 남자는 촛불을 끄듯 사라져 버린 뒤라스의 작은오빠와 닮아 있다…그 작은 별이 어머니와 큰오빠의 무덤마저 잊힌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불멸하고 불멸해야 하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멋모르고 소설 속 ‘형체가 없는 바다’라는 말을 좋아했다. 부끄러운 일인데 내 총문연 코치자켓 손목에 쓰여 있기도 하다. 뒤라스의 문체, 특히 이 문구가 전해주는 은밀한 탐미와 사랑의 느낌, 그리고 왜인지 모를 막막함과 슬픔의 뉘앙스를 나는 동경했다. 많은 뒤라스 역자는 그녀가 “세상의 어떤 사랑도 사랑을 대신할 수 없다.”(마르그리트 뒤라스,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면서도 바로 그 절대적인 사랑의 모색과 불가능성이 그녀의 작품 전반을 관통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낭만적인 욕망의 추구와 좌절이 그녀의 삶이기 때문에 <<연인>> 역시 그것을 더듬거리면서도, 머뭇거리지만 열정적으로, 놓치지 않도록 섬세하게 받아 적고 있다.

 

타자는 오직 할 수 있을 수 없음을 통해서만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 그래서 에로스적인 것을 ‘붙잡다’ ‘가지다’ ‘알다’와 같은 말로 규정하려 한다면 말이다. 에로스 속에 그런 것은 전혀 없다. 혹은 에로스는 그 모든 것의 실패다. (한병철, <<에로스의 종말>>)

 

붙잡거나 알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쓰는 문장들은 찢기고 모호해지거나 갑작스러운 단어들이 떠다닌다. 따라서 소녀와 중국인 남자는, 소녀와 그 가족들은 거의 대화하지 않는다. 바라보거나 비껴가거나 체념하듯 내리까는 ‘시선과 행위들’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소녀는 그때에도 언젠가 자신의 몸을 충동질하는 욕망(p.27), 그 아름다움을 마주 보고 써야 함을 알고 있다. 결국 사랑의 “슬픔이 나의 연인”이 될지라도, 같은 꿈을 꾸던 어머니, 허나 결국 강물의 광기 속에 떠밀려 가던 어머니가 문득 눈을 뜨고 “사막과도 같은 그녀의 삶 속에서 울부짖을 때부터 그녀가 항상 나에게 예고해 준 그 불행 속에 떨어지고” 말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