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김재홍 역, 《정치학》, 길, 2017. 기반
다분한 오해석
제6권 정치체제의 종류와 정치제도 – 민주정과 과두정
제1장 각 정치체제의 고유한 조직 방식 탐구 – (1) 민주정
앞서 우리는 정치체제에서 최고의 권위를 갖는 심의 기구와, 관직 기구, 사법 기구가 조직되는 여러 방식, 그리고 이러한 변형(diaphora)들은 각각 어떤 종류의 정치체제를 위한 것인지, 더하여 무엇으로부터 정치체제의 보존과 파괴가 일어나는지 살펴보았다.
그런데 많은 종류의 민주정이 있는 것처럼 다른 정치체제에도 하위 분류가 많기 때문에, 다시금 구체적으로 각각의 정치체제에 고유하고 유익한 조직 방식을 검토해 보자. 이로부터 심의, 관직, 사법 기구를 조직하는 모든 조합이 만들어지며, 그 중 여러 조직 방식이 결부될 때 정치체제들이 서로 겹쳐져 과두정적 귀족정이나 민주정적 혼합정(politeia)과 같은 혼합된 정치체제들도 탄생할 것이다. 예를 들면 심의적 요소와 공직자 선출 과정은 과두정적이나, 법정과 관련된 부분은 귀족정적으로 조직될 수 있다. 그 후 우리는 이 정치체제들 중 무엇이 폴리스에 최선인지도 분명히 해야 한다.
우선 민주정의 종류와 확립, 보존 방법을 탐구함으로써, 그와 반대되는 정치체제인 과두정에 대해서도 명백해질 듯 보인다. 이때 여러 종류의 민주정이 존재하는 이유는 첫째로, 앞선 장에서 말한 바처럼 인민들(demoi)이 다르기 때문이다. 인민을 구성할 수 있는 집단은 농민, 장인과 상인, 일용 임금노동자인데, 후에 놓인 집단이 덧붙여질수록 민주정은 더 나쁘게 된다. 둘째 이유는 바로 우리가 지금 논하려는 것이다. 민주정에 수반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특성이 발휘되는 정도에 따라 여러 종류의 민주정이 생겨난다. 정치체제를 세우려는 자는 그 근본적 원리(hupothesis)에 따라 고유한 모든 특성을 한데 모아야 하지만, 이를 행하는 방식에서 (중용을 추구하지 않으면) 잘못을 범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민주정의 근본 원리와 목표에 대해 알아보자.
제2장 민주정의 원리와 제도
민주정적 정치체제의 근본적 원리이자 목표는 자유이다. 자유에는 두 구성 요소가 있으며 이 둘 모두 민주정의 특성이다. 첫째는, 번갈아가며 지배하고 지배받는 것이다. 민주정적 정의는 가치(axia)가 아니라 수(arithmos)에 따라 (재산을 포함한 모든 것에서) 동등한 몫을 갖는 것(to have equality)이기 때문이다.[1] 그리고 시민들 각자가 동등한 몫을 가진다면, 다중(가난한 자들)이 필연적으로 최고의 권위를 가지며, 그들에게 옳다고 여겨지는 것이 정의가 된다. 자유의 둘째 요소는,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다.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는 것은 노예의 특성이다. 위의 두 요소로부터, 민주정에서는 시민들이 최대한 그 누구에게도 지배받지 않으면서, 지배받는다 하더라도 번갈아가면서 지배하고 지배받아야 한다는 요구 사항이 따라 나온다.
그러므로 다음의 제도들은 민주정적이다. (1)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으로부터 관직을 선출하는 것, (2) 모든 사람이 각자를 지배하고, 번갈아가며 각자가 모든 사람을 지배하는 것, (3) 모든 관직, 혹은 경험이나 기술이 필요치 않은 관직들은 추첨으로 채우는 것, (4) 관직을 위한 재산 자격 조건은 가능한 한 낮거나 없는 것, (5)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동일한 사람이 어떤 관직을 두 번 맡을 수 없는 것, (6) 최대한 많은 관직을 짧은 기간 동안만 맡는 것, (7) 모든 사람이나 모든 사람들로부터 선출된 재판자들이 모든 사안 혹은 대부분의 중대한 사안들을 재판하는 것, (8) 민회가 모든 사안 혹은 가장 중대한 사안에 대해 최고의 권위를 갖지만, 어떤 공직자 ‘한 사람’은 어떤 사안에 대해 최고의 권위를 갖지 못하거나 가능한 한 소수의 사안에 대해서만 최고의 권위를 가지는 것, (9) 되도록이면 정치체제의 모든 관직들이 보수를 받는 것, (10) 어떤 관직도 영속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
이러한 제도들은 수적 동등성과 자유를 중시한다는 원리로부터 비롯하기 때문에, 모든 민주정에 공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제3장 민주정의 동등성과 정의
그런데 앞선 장에서 말한 것과 달리, (분명 가난한 자들일) ‘다수’가 옳다고 결정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정의롭다는 견해는 민주정의 목표와 달리 동등하지 않음과 부정의를 포함한다. 만약 과두정 옹호자들이 정의란 ‘가장 부유한 자산가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명백히 부정의한 참주정으로 흐르는 것처럼, 반대로 정의란 ‘다수가 수적 우위에 따라 결정하는 모든 것’이라면 그들은 소수의 부유한 자들로부터 재산을 몰수함으로써 부정의를 저지를 것이기 때문이다. 수적 동등성은 번갈아가며 지배해야 한다는 것 외에 재산의 동등성까지 함축하지는 않는데도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폴리스를 이루는 가난한 자들과 부유한 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민주정에서 수적 동등성을 가질 수 있는지 논해야 한다. 이를테면 500명과 1000명의 재산 총량이 같을 때, 부유한 500명은 2개씩 투표권을 가지고, 가난한 1000명은 1개씩 투표권을 가지는 식으로 정치적 권력을 분배하는 것도 수적 동등성에 따른 제도일 수 있다. 한편, 부유한 500명과 가난한 1000명에서 각각 동일한 수를 취하여 관직 선출과 법정에 대해 최고의 권위를 행사하게 하는 일도 가능하다. 어느 것이 가장 민주정적으로 정의로운 정치체제인가?
어쨌든 우리는 빈자들과 부자들, 양편이 모두 동의할 수 있는 동등성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어느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받아들여보자. 빈자와 부자 ‘각 집단 내에서’ 다수에게 옳게 보이는 것이 최고의 권위를 가진다. 만약 두 다수가 의견을 달리했다면, 양쪽에 빈자와 부자의 수와 재산 우열에 따른 가중치를 부여하여 계산했을 때 재산 평가에서 우세한 쪽을 옳은 의견으로 받아들인다. 만약 이 경우에도 총량이 동등하다면 추첨이나 다른 방편을 고안할 수 있다. 물론 이 방식도 완전하지 않고 민주정이 진정 추구할 만한 동등함과 정의를 찾는 것은 어렵지만, 적어도 힘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동등성과 정의에 동의하도록 설득하는 것보다는 쉽다. 그들이 왜 이러한 약자들의 바람을 고려하겠는가?
질문 1. ‘최선의 민주정’과 ‘가장 민주정적으로 정의로운 민주정’
민주정적 정의에 가장 충실히 따르는 정치체제는 최선의 민주정인가? 6권 2장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적 동등성(ison)은 민주정이 추구하는 정의라고 말한다. 그런데 ‘수적 동등성’이라는 개념은 5권 1장에서 (기하학적 비례에 따르는 가치의 동등성과 달리) 산술적 비례에 따르는 것이라고 단순하게 이야기된 바 있다. 수적 동등성이 재산의 동등함까지 함축할 수 없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물론 아리스토텔레스는 평등주의 정치체제를 비판하는 2권 7장에서 시민들의 재산을 균등화하는 것이 올바르지도, 유용하지도 않다고 주장하였다(1267a38-1267b13 참조). 또한 “모든 면에서 단적으로 어느 한쪽의 동등성에 따라 조직된 정치체제는 나쁘”기 때문에(1302a3) 극단적으로 수적 동등성만을 밀어붙이는 정치체제는 바람직하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어쨌든 수적 동등성과 자유가 민주정 고유의 정의이자 궁극적 목표라면, 재산의 동등성까지 추구하는 것이 오히려 가장 ‘민주정적으로는 정의로운’ 정치체제가 아닌가? 이 경우 우리는 6권 4장에서 혼합정과 유사한 ‘최선의 민주정’이 정치체제의 보편적 이상에 근거해서는 최선이지만, ‘가장 민주정적으로 정의로운 민주정’과는 분리되는 것이 아닌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제4장 민주정의 유형과 서열
우리가 앞서 말한 민주정의 네 가지 유형 중에서, 순서상 첫 번째 것, 즉 가장 오래된 민주정이 최선이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 혼합정이라 부르는 것에 가깝다. 또한 이러한 민주정은 폴리스를 구성하는 인민들의 종류로 구분하는 경우에도 첫 번째, 즉 최선의 민주정이다. 첫 번째 민주정은 농사짓는 인민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이 가장 나은 다중이기 때문이다. 다중이 농업, 적어도 목축으로 살아가는 곳에서 최선의 민주정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이들은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지 못해서 여가가 없고 민회에 잘 참여하지 못하면서도, 생활 필수품을 채우는 것이 우선이라 다른 사람의 소유물을 탐하지는 않는다. 누군가 그들의 일을 방해하거나 무언가를 빼앗아가지 않는다면, 그들은 참주정이든 과두정이든 잘 견뎌낸다. 그리고 만약 이러한 인민들이 명예를 사랑한다면 관직자 선출과 감사에 대한 최고의 권위만 부여하면 충분하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최선의 민주정은 모든 시민이 관직을 선출하고 감사를 시행하며 재판에 참여하지만, 최고의 관직은 높은 재산 자격 조건에 근거해서 선출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지배하는 능력이 있는 훌륭한 사람들에게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는 다중뿐 아니라 훌륭한 사람들과 귀족에게도 충분히 만족스러울 만하다. 자신보다 열등한 사람들에 의해 지배받지 않으면서도, 관직자들은 다중이 관직자 감사에서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의롭게 지배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약은 방종을 막는 데 유익하다. 이렇게 하여 앞서 말한 것이 최선의 민주정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농민 다중 다음으로 최선의 인민은 목자들이다. 그들은 농업과 유사한 일을 하면서 전쟁 시 신체적으로 쓸모 있다. 나머지 민주정을 구성하는 다른 다중, 즉 장인이나 장사하는 인간들, 임금노동을 하는 계층은 어떠한 덕과도 연관이 없고 하잘것없이 산다. 따라서 최선의 민주정을 만들기 위해서 해야 할 일 또한 분명하다. 인민에서 나쁜 다중을 분리해내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정의 가장 나쁜 형태는 모든 사람이 정치체제에 참여하는 것이고, 이는 지탱하기 쉽지 않은 정치체제이다. 인민 지도자들은 인민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 가능한 한 시민 조직을 불리려고 하지만, 다중이 귀족과 중간적인 사람들을 지나치게 넘어서 구성되면 부자들의 재산을 부정의하게 몰수하는 등 정치체제는 극히 무질서하게 된다. 나쁜 요소들이 많아지면 눈에 띄게 된다는 것은 명백한 이치이다.
더불어 이러한 극단적 민주정은 참주정적인 특징을 갖는다. 예를 들어 노예를 통제하지 않는 것,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도록 그대로 놔두는 것[2] 등이다. 다중(polloi)에게는 절제 있게 사는 것보다 무질서하게 사는 것이 단순히 더욱 즐거운 것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질문 2. 4권 4장과 6장에서의 민주정 분류는 서로 다른가?
우선 4권 4장과 6장에서의 민주정 분류를 상기해 보자.
4권 4장에서 다룬 민주정의 종류는 (4-1) 가난한 자나 부자 어느 쪽도 우월권(권력)을 갖지 못하는 것이 동등함이라고 규정되는 민주정, (4-2) 낮은 재산 자격 조건을 두고 관직에 참여하도록 하는 민주정, (4-3) 태생에서 흠결이 없는 자라면 관직에 참여할 수 있는 민주정, (4-4) 시민이라면 관직에 참여하는 민주정, (4-5) 법이 아닌 다중이 최고의 권위를 가지는 극단적 민주정이었다.
한편, 4권 6장에서 민주정은 (6-1) 농민처럼 적절한 재산을 가진 부분이 관직에 참여하는 민주정, (6-2) 태생에 흠결이 없는 자라면 관직에 참여할 수 있는 민주정, (6-3) 자유인이라면 관직에 참여하는 민주정, (6-4) 가난한 다중이 최고의 권위를 가지는 극단적 민주정으로 나뉜다.
1. (4-1)은 (6-1)과 동일할 수 있는가?
이 중 문제는 (4-1)인데,『정치학』(김재홍 역) 역자 각주 127번에는 (4-1)이 4권 6장(5장이라고 되어 있는데 아마도 오기인 듯하다)과 6권 4장의 민주정 목록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6권 2장의 서술에 따르면, 수적 동등성과 자유라는 민주정의 근본 원리로부터 따라 나오는 첫 번째 민주정은 가난한 자와 부자 어느 한편만 최고의 권위를 독점하지 않고 수에 따라 동등하게 지배하는 정치체제이다(1318a4-11 참조). 그리고 이것은 (4-1)과 같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민주정적 정의를 충실히 실현한 (4-1)은 (여기서 민주정적 정의를 ‘충실히 실현하는’ (4-1)이 과연 수적 동등성과 자유를 ‘극단적으로’ 추구한 것인지, 아니면 중용을 지킨 것인지 묻는다면 ‘최선의 민주정’과 ‘가장 민주정적으로 정의로운 민주정’의 관계를 다룬 질문 1을 참조해야 한다. 만약 후자라고 한다면) 가장 오래되고, 바람직한 ‘최선의 민주정(6-1)’이라고도 불릴 수 있는가? 실제로 (6-1)에서 농민들이 중산 계급의 역할을 할 수 있다면 파당이 형성되는 것을 억제하면서 부자와 빈자 어느 쪽에도 권력이 편중되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2. (4-2)는 (6-1)에 포함되는 제도일 수 있는가?
그리고 6권 4장에서 ‘최선의 민주정(6-1)’은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시민을 적절한 재산을 가진 농민 및 목자에 한정하는데, 이는 (4-2)처럼, 낮은 재산 자격 조건을 두고 관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는가? 만일 이 두 질문에 모두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4-1)은 4권 6장 및 6권 4장에서 언급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4-1)과 (4-2)가 합쳐져 4권 6장의 최선의 민주정, (6-1)과 같아진다고 볼 만한 여지가 있지 않은가?
질문 3. 6권 1장의 두 기준에 따른 민주정의 분류는 상응하는가?
6권 1장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정을 분류하는 기준으로 인민의 구성과 민주정에 고유한 특징들이 발휘되는 정도, 이렇게 두 가지를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두 기준에 따른 민주정 분류는 서로 일대일로 대응하는가?
그런데 사실 6권 4장에서는 최선의 민주정이라면 농민, 적어도 목자들까지만 정치에 참여하고 극단적 과두정은 모든 사람이 정치에 참여한다고 이야기함으로써 두 대척점에 놓인 민주정만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하지만 인민의 구성에 따라 여러 민주정이 구분된다는 기준으로 미루어 보아 우리는 6권 4장의 민주정 분류가 4권 6장에서의 민주정 분류와 유사할 것이라 짐작해 볼 수 있다.
한편 6권 2장에서 민주정에 고유한 특징들은 ‘수적 동등성’이라는 원리에 따라 번갈아가며 지배하고 지배받는 것,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자유, 이 두 가지로 이야기되고 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특징들의 약간은 어떤 종류의 민주정에 수반하고, 이러한 것들의 많음은 두 번째 종류의 것에 수반하고”와 같은 서술에서 민주정적 특징들이 발현되는 정도에 따라 민주정을 구분하고 있다. 일단 6권 3장의 서술을 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재산의 균등화까지 포함하는 수적 동등성 추구’, 즉 민주정적 특성이 지나치게 발휘되는 것은 지양하려는 듯 보이는데[3], 그렇다면 이 두 번째 기준에 따라 민주정의 목록과 서열을 정리하면 어떻게 되는가? 이는 인민의 구분에 따른 구분과 상응할 수 있는가?
제5장 민주정의 확립과 보존
그런데 사실 입법자와 정치체제 설립자에게는 정치체제를 확립할 뿐 아니라 보존하는 일이 큰 임무이다. 이를 위해서 입법자들은 폴리스를 ‘최대한 민주정/과두정적으로’ 통치할 수 있도록 만드는 방책이 아니라 가장 오랜 시간 동안 폴리스를 ‘그 정치체제 하에 유지할 수 있는’ 민주정/과두정적 방책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1. 과도한 무질서를 억제하기
이를테면 오늘날 인민 선도자들이 단지 인민의 환심을 사기 위해 법정에서 많은 재산을 몰수하는 것은 옳지 않다.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의 재산이 무조건 공공의 것이라면, 군중들은 재산을 얻기 위해서 유죄 판결에 표를 던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무질서는 정치체제에 큰 위험을 가져온다. 인민이 귀족들을 상습적으로 고소하게 놓아 두는 것도 마찬가지로, 폴리스는 될 수 있으면 시민들이 최고의 권위를 가진 자들과 그 정치체제에 대해 좋은 감정을 품거나, 적어도 적으로 간주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극단적 민주정에서는 시민 수가 많고, 그 시민들은 (대부분 가난하기 때문에) 보수 없이는 민회에 참여하지 않을 터인데, 이러한 보수는 귀족으로부터 부당하게 재산을 몰수함으로써 취해질 것이고 이러한 부정의는 민주정을 전복시키는 원인이 된다. 따라서 세입이 없는 곳에서는 민회가 자주 열리지 않게 하고, 세입이 있는 곳에서는 부자들을 착취하는 인민 선도자가 생겨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부자들이 의미 없는 공적 봉사에 돈을 내도록 강제하지 않는 것도 방책이다.
2. 지나친 가난을 경계하기
그럼에도 진정한 민주정에서는 다중이 지나치게 가난해지지 않도록 살펴보아야 한다. 지나친 가난 역시 민주정을 나쁘게 하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카르타고가 인민들에게 적당한 부유함을 누리게 해 줌으로써 이 책무를 잘 해냈다.
3. 과두정적 요소 도입하기
한편 타라스인들처럼 관직을 두 종류로 만들어 어떤 것은 추첨으로, 어떤 것은 투표로 선출하게 하는 것도 좋다. 추첨에 의한 관직 선출은 인민들이 관직에 참여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고, 투표에 의한 관직 선출은 인민들이 보다 훌륭히 통치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하여 어떻게 민주정을 확립하고 보존할 수 있는지 말하였다.
제6장 각 정치체제의 고유한 조직 방식 탐구 – (2) 과두정
이로부터 과두정이 어떻게 확립되어야 하는지도 명백해진다. 민주정이 과두정과 반대된다는 사실로부터, 우리는 과두정의 특성들과 종류를 추론할 수 있다.
우선 순서상 첫 번째인 과두정은 최선의 민주정처럼 가장 잘 섞인 과두정, 즉 혼합정에 가까운 것이다. 여기서 입법자들은 폴리스에 필수적인 관직의 재산 자격 조건은 낮게 잡고, 그 중 보다 권위 있는 관직은 재산 자격 조건을 높임으로써, 다수의 인민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언제나 보다 나은 자들이 폴리스를 통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재산 자격 요건을 얼마나 바짝 조이는지에 따라 과두정의 단계가 정해진다. 이 중 가장 집단 권력적이고 가장 참주적인 극단적 과두정은, 비유하자면 나쁜 선원들이 탄 나쁜 상태의 배가 잘 항해할 수 없는 것처럼 가장 경계해야 하는 정치체제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민주정을 보존하는 것은 수에 따른 정의로부터 비롯한 ‘많은 사람(considerable populations)’이지만, 과두정을 보존하는 것은 가치에 따른 정의로부터 비롯한 ‘좋은 질서(being well arranged)’이다.
제7장 과두정의 확립과 보존
1. 정치체제 보존에 적절한 군대 설치하기
다중에는 농민, 장인, 상인, 일용 임금노동자라는 네 가지 주요한 부분이 있다. 그리고 전쟁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군대 역시 기병, 중무장 보병, 경무장 보병, 해군, 이렇게 네 종류가 있다. 이때 영토가 기병에게 적합한 곳에는 강력한 과두정을 설립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중무장 보병에게 적합한 곳에서는 그 다음 종류의 과두정이 자연스럽다.[4] 한편 경무장 보병 군대와 해군은 민주정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다중과 부자 사이 파당적 다툼이 일어날 때 대개 기병과 중무장한 군대가 경무장 보병과 해군에 맞서 싸우게 되며, 이러한 까닭에 부자들이 평소 경무장 보병 같은 군대를 설치한다면 오히려 독이 되는 일이다.
2. 다중의 제한된 정치 참여를 보장하기 (민주정적 요소 도입하기)
한편 이러한 파당을 막기 위해서는, (과두정에서도) 다중이 통치 계급에 어느 정도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를테면 재산 자격을 획득한 자들, 일정 기간 장인 일을 그만둔 사람들, 통치 계급 바깥에 있지만 정치에 참여할 자격(덕)을 갖추었다고 판단되는 자들을 관직에 참여시킬 수 있다.
3. 최고 관직에는 부유한 자만이 수행 가능한 의무를 부과하기
또한 과두정에서 최고의 권위를 갖는 관직은 공적 봉사(leitourgia)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좋다. 관직을 위해서는 높은 대가를 지불하도록 함으로써, 인민이 자발적으로 관직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공적 봉사를 통해 폴리스가 봉헌물과 건물들로 장식된다면, 인민들은 정치체제가 잘 존속되는 것을 기뻐하며, 귀족들은 자신의 비용이 아름다운 기념물로 남는 것을 보게 된다. 하지만 오늘날 과두정은 관직의 명예 못지 않게 이익을 추구하기에, 오히려 이와 반대로 행한다. 이러한 과두정은 다수와 마찬가지로 돈을 추구하는 자들로 구성되는 정치체제로서, ‘작은 민주정’이라 불릴 만하다.
이렇게 하여 민주정과 과두정이 어떻게 세워지고 보존되어야 하는지 논하였다.
질문 4. ‘좋은 구조’는 ‘사람 수의 많음’과 양립할 수 없는가?
분명 수적 동등성에 따르지 않으면 민주정이라 할 수 없고, 소수의 부유한 자가 지배할 때 인민들이 지배 계층에 반발하여 무질서하게 파당을 일으키면 과두정이 유지될 수 없으므로 좋은 질서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왜 역자의 각주 129번처럼 ‘많은 사람’이 지배하는 것과 ‘좋은 질서’는 양립 불가능한가? 3권 11장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는 인민이 마치 한 사람처럼 기능하며 협력하면 소수의 훌륭한 자들보다도 나은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언급했었다. 더불어 6권 5장에서도 민주정의 보존을 위해서는 인민의 무질서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다수의 지배’와 ‘무질서’는 필연적으로 연관되어야만 하는가?
질문 5. 혼합정으로 흐르는 것이 최선의 과두정이 되는 길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정의 근본 원리로부터 민주정의 종류와 고유한 제도, 확립 및 보존 방법을 도출하였다. 또한 과두정 역시 민주정과 반대되는 것으로서 같은 방식으로 탐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에 따르면 민주정은 수적 동등성과 자유에 기반하여, 과두정은 가치에 따른 동등성과 부(富)에 기반하여 생성되고 분류된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적 동등성이든 가치에 따른 동등성이든 단적으로 어느 하나에 따라 조직된 정치체제는 옳지 않다고 본다. 따라서 6권 5장과 7장에서 다룬 정체 보존 방법 역시 민주정과 과두정 양쪽이 서로의 요소를 일부 도입함으로써 혼합정으로 이행해야 한다는, 같은 구조의 논지를 구사하고 있다. 출발점은 민주정과 과두정이라는 양 극단의 정치체제이지만, 결국 혼합정이라는 도착점은 동일한 것이다. 그런데, 최선의 과두정은 왜 귀족정이 아니라 혼합정인가? 부유한 소수가 지배하는 정치체제의 이상은 ‘민주정과 혼합된 정치체제’가 아니라, 가치에 따른 동등성에 기반하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덕 있는 소수가 지배하는 귀족정’이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즉, 가치에 따른 동등성이라는 과두정의 근본 원리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관직 참여의 기준을 외적 좋음인 부 대신 ‘탁월성’으로 점차 이동시키는 것이 민주정적 요소를 도입하는 혼합정보다는 ‘최선의 과두정’에 가까워지는 길이 아닌가 한다.
제8장 정치적 관직의 종류
정치체제의 확립과 보존에 관한 논의에서 관직의 종류를 규정하는 문제가 빠질 수는 없다. 이제 어떤 관직이 얼마나 있으며, 무슨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가 등에 대해 검토하자. 필수적인 관직 없이 폴리스는 존재할 수 없으며, 여가와 번영 및 좋은 질서(kosmos)를 유지하는 관직 없이 폴리스는 잘 경영될 수 없다. 한편 작은 폴리스에는 관직이 필연적으로 적고, 큰 폴리스에는 관직이 훨씬 많다. 따라서 어떤 관직을 통합하고 어떤 관직을 떼어낼 것인지 판단하는 일도 중요하다.
폴리스에 필수적인 관직들은 다음과 같다. (1) ‘시장 관리’, 즉 계약과 좋은 질서에 대해 감시하는 관직. 거의 모든 폴리스는 자족(autarkeia)을 위해서라도 필연적으로 상거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2) 도심에 있는 공공 재산 및 사적 재산을 관리하는 관직, 즉 ‘시정 경영’도 필요하다. 이것에는 건물과 도로 보존 및 보수, 토지 경계에 대한 관리 등이 포함된다. 한편 인구가 많은 폴리스에서는 이 관직을 쪼개어 성벽 건축관 등 다른 이름을 부여한다. (3) 어떤 이들은 시골과 도심 바깥의 문제를 처리해야 한다. 이들은 ‘시골 경영자’ 또는 ‘삼림 관리자’로 불린다. (4) 또한 공적인 세입을 거두어들이고 지키며, 행정 부서에 분배하는 ‘수납관’ 또는 ‘회계관’도 필요하다. (5) 사적인 계약과 법정의 판결을 등기하는 관직도 있다. 이 관직은 여러 부서로 나뉘기도 하고 하나로 통합되기도 한다. 이들은 ‘신성 기록관’, ‘감독관’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그리고 모든 관직들 중에서 가장 필수적이면서도, 가장 괴로운 일이 있다. (6)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벌금을 강제로 징수하거나 신체를 구금하는 일을 맡는 자들이다. 이 일은 많은 적대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관직은 사람들이 잘 맡으려 하지 않지만, 정의는 집행되었을 때 비로소 유익한 것이라는 점에서 필수적이다. 이 관직은 단일한 것으로 두지 말고 임무를 나누는 것이 좋다. 벌금을 부과하는 관직과 벌금을 징수하는 관직을 달리하면, 동일한 사람이 유죄 판결을 내리고 벌금을 강제 징수하는 경우보다 훨씬 덜 적대감을 살 것이다. 더하여, 그 자신이 수감될 만한 못된 사람이 이 관직을 맡게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동일한 관직이 동일한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맡겨지는 것도 위험하다.
그리고 폴리스에 필수적이면서도 보다 높은 위계에 놓이는 관직들이 있다. 이러한 관직들은 풍부한 경험과 신뢰성이 요구된다. (7) 그 중 하나는 폴리스를 수호하는 관직, 즉 군사적인 필요를 위해 임명된 관직들이다. 이들은 전시뿐만 아니라 평화시에도 성을 수호하고 시민들을 질서 아래 유지한다. 작은 폴리스에서는 이 관직이 하나이고 ‘장군’ 또는 ‘총사령관’이라 불린다. 그런데 기병 부대나 경무장 부대 등 여러 군대들이 있다면 각각을 책임지는 관직, 즉 기병대 지휘관, 연대 지휘관 등이 설치되어야 한다. 그리고 (8) 다른 관직들이 경영하는 공공 재산의 계산서를 수령하고 회계 감사를 수행하는 관직도 필요하다. 이들은 ‘회계관’, ‘감찰관’ 등으로 불린다.
그리고 이 모든 관직 외에 (9) 폴리스의 모든 것에 대해 최고의 권위를 가지는 관직이 있다. 이 관직은 법령 도입 권한뿐 아니라 최종적인 결정(telos) 권한을 가지고 있거나, 인민에게 최고의 권위가 있는 곳에서는 민회의 좌장 노릇을 한다. 어떤 곳에서는 이들을 ‘예비 심의관’들이라 부르고, 다중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그 대신 ‘평의회’라고 부른다.
또한 예외적으로 (10) 신들과 관련된 관직이 있다. 이들은 사제 및 사원과 관련된 문제들, 신들에 대한 제의를 감독한다. 작은 폴리스에서는 이 관리가 하나로 통합되고, 조금 더 큰 폴리스에서는 희생제의의 장이나 신전 관리자 등으로 나뉘어 있다. 그리고 공적인 희생제의에 전념하는 사람을 아르콘(최고 관직자) 또는 프뤼타니스(최고 성직자)라고 부른다.
요약하면, 필수적인 종류의 관리는 종교, 군사, 세입과 지출, 시장, 도심, 항구 및 시골, 법정, 계약의 등기, 벌금의 징수, 죄수의 구금, 회계 및 공직자의 감찰, 회계 감사, 공적인 업무에 대해 심의하는 기구와 관련된다.
한편 여가, 번영, 좋은 질서를 보다 많이 고려하는 폴리스에 고유한 것은 (11) 여성, (12) 법률 수호, (13) 아이, (14) 체육 지도, (15) 체육 제전과 디오뉘소스 제전과 같은 볼거리와 관련된 관직이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모여 최고의 권위를 갖는 공직자를 선출하는 세 가지 관직이 있는데, 이들은 (16) 법률 수호자, (17) 예비 심의자, (18) 평의회이다. 이 중 법률 수호자는 귀족정적이고, 예비 심의자들은 과두정적이고, 평의회는 민주정적인 관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정치적 관직들의 종류와 특성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논하였다.
[1]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6권 3장에서 다시 재산의 동등성까지 포함하는 수적 동등성은 진정한 민주정적 정의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2] 6권 2장에서 말한 두 번째 의미의 자유가 극단적으로 발현되면 참주정으로 흐를 것임을 알 수 있다.
[3] 6권 5장에서 ‘입법자들은 폴리스를 ‘최대한 민주정/과두정적으로’ 통치할 수 있도록 만드는 방책이 아니라 가장 오랜 시간 동안 폴리스를 ‘그 정치체제 하에 유지할 수 있는’ 민주정/과두정적 방책을 고려해야 한다’는 서술도 마찬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4] 강력한 과두정이 지배 계급의 권력이 가장 강력한 극단적 과두정이라면, 다음 종류라는 것은 세 번째 과두정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강력한 과두정이란 가장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최선의 과두정, 혹은 다른 것을 의미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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