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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 리브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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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네, 《꽃피는 노트르담》 (말하면서 꿈꾸는 사람, 눈앞에 있는 나를 관통하거나 우회하여 어딘가 먼, 장소 없는 장소와 맞닿아가는 사람을 나는 사랑한다. 적확하게는, 사랑할 수밖에 없게 이끌려 간다. 그는 아폴론의 신탁을 향하여 품을 열어젖혀 눈먼 예언자, 가끔 얼굴을 찡그리곤 지상으로 스러진 말들을 엮을 때는, 촛농이 흐르는 손으로 잠자코 밤의 능선을 건너가는 순례자. 그리고 모든 작가들은, 모든 사람들이 대상의 현존을 위하여 초월적 객관의 들뜬 속삭임과 비밀스럽게 입술을 얽듯이(이러한 물자체, 초월, 종교성은 정말 수수께끼이다), 그들 문장 너머의 무엇인가와 관계한다. 그리고 주네가 황홀경 속에서 몸을 섞는 그것은 이 한 문장 속에 집약될 수 있겠다. '그는 (...) 허옇고 길쭉한 촌충들이 고리처럼 구불구불 감아오른 반파된 ..
칸트, 《순수이성비판》 수도원 원장 테라손은, 책의 크기를 책장의 수효에 따라서가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시간에 따라 측정한다면, 많은 책에 대해서, '그것이 그렇게 짧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짧았을 터인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복잡하기는 하지만 하나의 원리로써 통합한, 사변적 인식의 전체를 파악하기 쉽게 할 의도를 가질 경우에는, 마찬가지의 충분한 권리로, '많은 책은 그렇게나 분명하게 되려고 하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분명하게 되었을 터인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분명성을 돕는 수단들은 비록 부분적으로는 도움이 되지만, 흔히 전체적으로는 이해를 산만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독자가 충분히 빨리 전체의 개관에 이르지 못하도록 하고, 그것들의 갖가지 밝은 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