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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있는 폭력

시더우드의 영화

어떤 반향은 돌아오지 않는다. 어떤 반향은 돌아오지 않는다. 한동안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이 문장만 되뇌었다. 계속, 계속 몸부림쳤는데도. 내가 좋아하는 시인은 '혀를 내밀면 울어버리는 문장'이란 구절을 썼다. 이곳저곳을 쏘다니면서도 생전 알지도 못한 고통이 찾아와 발목이 꺾인 새처럼 주저앉았다. 목놓아 우는 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한번만, 한번만 다시 와 달라고, 잠들지 못하고 수십 번 국화로 둘러싸인 그 평온한 보랏빛 얼굴을 떠올렸다.

늘 발치에서 머무르는 슬픔. 이 비틀거리는 걸음은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야 할까. 그 상냥하고 쓸쓸한 선배는 도대체 어디로 갔나. 여전히 무너지는 것과 잃어버리고 싶은 것들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또다시 은유의 덫으로 도망쳐야 저렇게 겨우 입이나 뗄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걸 이해하던 사람에게 이 글을 바친다니 그저 미안한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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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가파른 죽음에 바쳐지는 밤과 낮.

 

소녀는 멀고 먼 들불을 향해 신호를 보낸다. 슬픔은 새끼를 잃은 늑대처럼 사납게 발길을 돌려 질주해 온다. 황금빛 언덕들이 경배하듯 치솟아 흐느낀다. 사라지는 것은 뜨거운 입술을 지니고 있다. 지평선에서, 노을의 말을 하던 강물이 그녀의 얼굴과 심장을 베어물고 지나간다. 이따금씩 새들은 낮게 울며 집의 뒤뜰을 날아가고, 부서진 햇볕의 질감은 풍토병을 가슴에 안고 찾아온 소년을 기억한다. 바람은 몇 송이 국화를 꺾으며 이름을 잊듯 유년을 떠난다.

 

여윈 달을 채찍질하는 어둠 속에서 소년은 약속의 바다*를 건너갔다. 몇몇 숲속 짐승의 노란 눈만이 그를 무참히 애도하였다. 그해, 겨우 몸을 가누는 어린 슬픔마저 목 조르던 겨울.

 

소녀는 석양의 숨을 쉬며 그네에 올라타고 그림자는 길어져 눈먼 사냥꾼처럼 마을을 내달린다. 들숨 때마다 버드나무는 강물로 흘러가고, 강물은 빛의 국경으로 사라지고, 아아, 사랑하자마자 헐려버린 집, 덧문이 붉게, 붉게 흔들린다. 양떼처럼 언덕을 달아나는 꿈들. 내창(內倉)으로 불길이 무너지면 소녀는 교차로에서 모래알을 쥔 손처럼 한없이 땅거미로 달려가는 기차를 본다. 텅 빈 차창은 태양과 평원이 스러지는 너의 꽃무덤을, 목젖을 타오르는 열병을, 우리의 푸른 영혼을 앗아간다. 촛불들이 일제히 꺼진다. 네가 깊이 고개 숙여 이 병든 마을을 들여다볼 때마다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지 못한 나의 눈은 지금 사라지는 발자국처럼 가난하다. 바람마저 떠나간 불탄 폐허에서 소녀의 유년은 볕이 들지 않는 요람을 지키고 있다. 열기가 심장을 새의 깃털처럼 움켜쥘 때에도, 제 몫의 슬픔을 겨냥하며 불온한 면역을 바라는 어린아이가 그곳에서 소년을 기다린다. 황혼이 붉게 번져가는 들판 위에서 그네는 삐걱이기를 멈춘다. 이윽고 소녀는 겨울 산까마귀가 서성이는 집의 대지로 돌아가 누워 약속 같은 잠에 든다.

 

그렇게 가파른 죽음에 바쳐지는 밤과 낮.

 

마을의 신수(神樹)에 올라가면 소년은 솔잎을 만지며 휘파람을 분다. 흰 커튼처럼 소슬하고 아름다운 얼굴에 구름과 먼 숲과 노을이 지나간다. 들불은 어느 잊힌 언덕을 서성인다. 어른대는 그림자 속에서 슬픔은 긴 울음을 울며 강물의 노랫소리로 아득히 흘러갔다.

 

 

 

 

*약속의 바다: 토마스 만, <베니스에서의 죽음>. 타치오가 아셴바흐를 생의 끝으로 손짓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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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철학자의 말처럼 삶이 텍스트라면 나는 곧 사라질 모래 유적 하나, 유일한 서기이자 서사인 나의 몸은 질문만 있고 답은 없는 문장들이고 자리를 바꿔 앉는 사구처럼 팔다리가 없는 물음표들을 뒤섞으면서 쓸쓸해진다 미처 잠들기 전에 석양을 이리 떼처럼 몰고 돌아오는 사막의 바람 속에서 영영 불타버렸으면 좋겠다 화양연화 끝의 양조위가 앙코르 와트에 불어넣었던 미미한 속삭임 같은 것이 될 때까지

정말 지리멸렬한 질문인데, 사랑이란 뭘까? 벗어날 때도 혹은 놓아줄 때도 되었다 싶지만 또다시 그냥 멍하니 있다가 그 오빠에 대해서, 때로 두려울 정도로 무심한 이 시간선 위에 조금의 흔적이라도 찾고 싶어져서 2021 논문발표 시간표를 뒤져 이름을 찾아내고 Who is a woman이라는 제목 보고 또 울었다 크립키의 쌉가능세계~ 이런 말에도 차마 행복해 보일 만큼 웃음을 터뜨리던 그 오빠가, 그 사람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는 게, 혼자서 그 어둡고 차가운 방에서 숨이 끊어지는 감각을 견디고 있었다는 게 솔직히 아직까지도 미칠 것 같고, 길 가다가 언뜻 닮은 사람을 보면 여전히 반사적으로 몸이 떨려온다 혹시 살아 돌아온 건 아닐까, 그럴 리 없다는 걸, 사후세계가 없다는 것만큼이나 그 오빠는 천국에서 잘 사는 게 아니라 그냥 이제는 어디에서도 없어지고 죽어버렸을 뿐이라는 사실만큼이나 잘 알지만, 그 찰나에는 비현실적인 기대 외에는 모든 게 부서져 버리는 것만 같다 어쩌면 차라리 그러기를 바란다 무언가 나를 앗아가기를, 완전히 그리고 돌이킬 수 없이

나에게는, 순전한 인간적 호의로 그렇게까지 좋아해 본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 오빠가 바이섹슈얼이든 여자가 되고 싶든 뭐하든 그딴 것들은 정말이지 상관 없었다 하지만 세상은 상관 있을 것이므로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같이 있어주고 싶었다 평범한 삶이 꿈이라던 사람 곁에 언제까지나, 이젠 다 사라져 버린 꿈을 겹쳐 꾸었다 어쩌면 이것도 일종의 사랑이었을까? 그래 만약 그렇다면...같이 뜨거운 광화문 거리를 걷거나 트젠 바에서 한없이 가난한 말은 집어치우고 술이나 마시거나 이제는 이름도 잊어버린 카페에서 서로를 만나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런 것들은 내가 사랑이 뭔지 모르고서도 사랑할 수 있다는 방증이었을 것이다

미녀 트젠 변호사 된다며, 아니면 언니랑 같이 셋이서 철/미학과 대학원에 한 자리씩 차지하기로 했잖아 공부도 제일 잘했으면서, 나랑 디저트 투어도 계속 다닌다며, 아니 다 필요 없고 언젠가 내가 언니라고 불러 주기로 했잖아 그때가 되면 올리브영이고 자라고 다 돌자며, 솔직히 삶이 다 그렇잖아, 그냥 우리는 끝없는 치욕 속에서도 숨 쉬고 날아다닐 수도 있었잖아 그런데 도대체 어디로 가 버렸어? 평소처럼...어려워하던 문제를 풀고 난 후의 하늘처럼 생이 쓸모 없어졌던 거야?
오빠, 동아리 끝나고 갑자기 둘이 새벽까지 술 마시고 온갖 쓸데없는 소리 하면서 사당 가는 도로를 정처없이 걷던 일 생각나? 때로 진지한 눈으로 구상하는 소설 이야기도 하고...그때 난 겁없이 남자 선배랑 늦게까지 부어라 마셔라 하고 선배가 마음에 든다고, 친해지고 싶다고 말하는 신입생이었고 오빠는 그래도 될 만큼 날 아껴주는 사람이었지, 그 후 어느 날 다들 떠드는 중에 오빠도 내가 마음에 든다고 했을 때 순수하게 기뻤던 게 생각이 난다...대충 그때쯤부터 애정하게 되었었나 봐

...그리고 이제 매일 밤 엄습하는 하나의 죽음. 형체 없는 증오 속에서 취한 채 머리를 기대던 밤처럼, 발인이고 뭐고 다 끝나고 제정신이 아닌 채 쓰러져 숨을 몰아쉬던 밤처럼 지겨운, 뒤엉킨 그림자의 손들이 또다시 나의 뺨을 지워 오고 있다 눈뜰 수 없도록, 더 이상 조음할 수 없도록 그 오빠가 스스로의 목을 조르던 빛 속에서처럼 가끔 난 그냥 사라져 버려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그 아름다운 술래를 찾으러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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