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ond main division
두 번째 장
Deduction of the applicability of the concept of right
법 개념(Rechtsbegriff)의 적용 가능성(Anwendbarkeit) 연역
§5 Fourth theorem
§5 넷째 정리
The rational being cannot posit itself as an individual that has efficacy without ascribing to itself, and thereby determining, a material body
이성적 존재자는 자신에게 물질적인 신체를 귀속, 그럼으로써 규정하지 않고서는 자신을 작용적인[활동적인 wirksames] 개인으로 정립할 수 없다
Proof
증명
According to the proof carried out above, the rational being posits itself as a rational individual - from now on we shall refer to this as the person - by exclusively ascribing to itself a sphere for its freedom. He is the person who exclusively makes choices within this sphere (and not any other possible person, who might make choices in some other sphere); thus, no other person is this person, i.e. no other person can make choices within the sphere allotted only to him. This is what constitutes the person's individual character: through this determination, the person is the one that he is, this or that person, called by this or that name.
위에서 수행된 증명에 따라, 이성적 존재자는 그의 자유를 위한 권역을 배타적으로 자신에게 귀속시킴으로써 자신을 이성적인 개체[Individuum]으로 정립한다. 이제부터 우리는 이 표현[개체] 대신 개인[der Person]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것이다. 그는 이 권역 안에서 배타적으로 선택하는 그러한 개인이고, 하나의 다른 권역 안에서 선택할 어떠한 또 다른 가능한 개인도 아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다른 개인도 그 자신이지 않다. 즉 어떠한 다른 개인도 오직 그에게만 할당된(zugeteilten) 권역 안에서 선택할 수 없다. 이러한 것은 개인의 개별적인 특성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규정을 통하여, 개인은 바로 그 개인(derjenige)이고, 이러하게 혹은 저러하게 불리는 이 사람 혹은 저 사람이다.
Our only task here is to analyze the action indicated above, to see what actually occurs when this action takes place.
우리의 유일한 과제는 위에서 지시된(angezeigte) 행위를 분석하는 것, 이러한 행위가 수행될 때(geschieht) 무엇이 도대체 엄밀하게[본래적으로, eigentlich] 일어나는지(geschieht) 보는 것이다.
(I) The subject ascribes this sphere to itself, and determines itself by means of it. Thus the subject posits this sphere in opposition to itself (The subject itself is the logical subject in any possible proposition one might think of; and the sphere we have mentioned is the predicate; but subject and predicate are always posited in opposition to one another.) Now what is the subject first and foremost? Obviously, it is that which is active solely in itself and upon itself; that which determines itself to think of an object or to will an end; that which is spiritual; pure I-hood.
(I) 주체[주관, Subjekt]은 이 권역을 자신에게 귀속시키며, 그에 의해 자신을 규정한다. 그러므로 주체는 이 권역을 자신에 대립하여 정립한다. (주체 자신은 인간이 사고할 수 있는 가능한 명제들 속에서 논리적인 주체이다. 그리고 우리가 언급한 권역은 술어(Prädikat)이다. 하지만 주체와 술어는 항상 서로에게 대립하여 정립된다.) 이제 여기서 무엇보다도, 주체란 어떤 것인가? 명백하게, 그것은 그 자신 안에서 그리고 그 자신에 대하여 활동적인(Tätige) 것이다. 그 자신에 대해 객관을 사유하는 것으로, 어떠한 목적을 의욕하는 것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정신적인 것, 순전한 자아임[자아성, Ichheit]이다.
Now, in opposition to this subject there is posited a limited sphere for the subject's possible free actions, but a sphere that nevertheless belongs exclusively to this subject. (By ascribing this sphere to itself, the subject limits itself, distinguishing itself from the absolute, formal I and thereby becoming a determinate, material I, or a person. One would hope that these two quite distinct concepts, which are contrasted here with sufficient clarity, will no longer be confused with one another.)
이제, 이러한 주체에 대립하여 한계지어진, 그러나 그에게[이 주체에게] 배타적으로 속하는 권역, 그의 가능한 행위들의 권역이 정립된다(entgegengesetzt). (이 권역을 자신에게 귀속시킴으로써, 주체는 자신을 한계지으며, 절대적인, 형식적인 자아로부터 규정된 물질적인 자아, 혹은 한 개인이 된다. 누군가는 여기서 충분히 뚜렷하게 대조되는(abstechend), 상당히 다른 두 개념이 더 이상 서로 혼동되지(verwechseln) 않기를 바랄[의욕할, wolle] 것이다.)
To say that this sphere is posited in opposition to the subject means: this sphere is excluded from the subject, posited outside it, separated from the subject, and completely divorced from it. Considered more determinately, this means first and foremost: the sphere is posited as not present wherever the self-reverting activity is present, and the self-reverting activity is posited as not present wherever this sphere is present; both are mutually independent and contingent in relation to one another. But whatever relates to the I in this manner belongs - in accordance with what has been said above - to the world. Thus the sphere identified here is posited first and foremost as a part of the world.
이 권역이 주체에 대립되어 정립된다는 것은 다음을 의미한다. 이 권역은 주체로부터 배제되어, 그 밖에 정립되고, 주체로부터 분리되며(abgetrennt), 완전히 갈라진다(geschieden). 보다 규정적으로 고려되었을 때[보다 명확하게 사고된다면], 이는 무엇보다도 다음을 의미한다. 이 권역은 자신에게로 되돌아가는 활동성에 의해 현존하지는 않는 것으로, 그리고 자신에게로 되돌아가는 활동성은 이 권역에 의해 현존하지는 않는 것으로 정립된다. 양자는 상호 독립적이고 서로에 대한 관계에서 우연적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된 바에 따라, 이러한 방식으로 자아와 관계맺는 것은, 세계에 속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다루어지는 그 권역은 무엇보다도 세계의 일부로서 정립된다.
(II) This sphere is posited by an original and necessary activity of the I, i.e. it is intuited, and it thereby becomes something real. - Since it would not be reasonable to assume that the reader is already familiar with certain results of the Wissenschaftslehre, I shall briefly describe those that are needed in the present context. - One doesn't have the slightest idea what transcendental philosophy - and Kant especially - is speaking of if one thinks that, when an act of intuition occurs, there exists outside the intuiter and the intuition some further thing, perhaps some matter, at which the intuition is directed (somewhat like the way common sense tends to conceive of bodily vision). What is intuited comes to be through the intuiting itself, and only through it; the I reverts into itself, and this activity yields both the intuition and the intuited at once. Reason (the I) is by no means passive in intuition, but absolutely active; in intuition, reason is the productive imagination. Intuition, in "seeing," projects something outward, somewhat like - if one wants an analogy - the way in which the painter projects the completed shape out of his eye onto the surface and "looks towards" so to speak, before the hand (which is slower) can copy the outline of the shape. The sphere that we have identified is posited here in the same way.
(II) 이 권역은 자아의 근원적인 그리고 필연적인 활동성에 의해 정립된다. 즉, 그것은 직관되며, 그럼으로써 실재적[실질적, Reellen]인 어떤 것이 된다. – 독자가 이미 이 학문론(Wissenschaftslehre)의 특정한 결과들과 친숙할 것이라고 상정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나는 현재 맥락에서 필요한 것들을 간략하게 기술하겠다. – 직관 행위가 일어날 때, 직관자와 직관 밖에 무엇인가, 아마도 물질처럼, 직관이 지향하는 그 너머의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면(다소간 일반적 인간 지성이 물체 지각(leibliche Sehen)에 대해 생각하는 것처럼), 초월철학이, 특히 칸트가,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조금도 예감할 수 없을 것이다. 직관되는 것은 오직 직관 자신에 의해서만 발생한다. 자아는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가고, 이 행위는 직관과 직관되는 것을 동시에 낳는다[소여한다]. 이성(자아)는 직관에 있어서 결코 수동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절대적으로 활동적이다. 직관은 이성의 생산적인 상상력(Einbildungskraft) 안에 있다. 바라봄(Schauen)에 의해 무엇인가가 바깥으로 투사되는데, 누군가 비유를 원한다면, 이는 화가가 완성된 형상을 그의 눈으로부터 표면에[지면에] 투사하고, 말하자면 보다 느린 손이 그 형상의 윤곽을 따라 그리기 전에 바라보는 방식과 유사하다. 여기에서 언급된 권역도 동일한 방식으로 정립된다.
Furthermore - the I that intuits itself as active intuits its activity as an act of drawing a line. This is the original schema for activity in general, as will be discovered by anyone who wants to awaken that highest intuition within himself. This original line is pure extension, that which is common to time and space and from which they first emerge through differentiation and further determination. This original line does not presuppose space, but rather space presupposes it; lines in space (i.e. the boundaries of things extended in space) are something entirely different from it. In just this manner the sphere we are discussing here is produced in lines and thereby becomes something extended.
더하여 – 그 자신을 활동적인 것으로서 직관하는 자아는 그것의 활동성[능동성]을 어떠한 선 그리기(Linienziehen)로 직관한다. 이는 활동성 일반에 대한 근원적인 도식이다. 그 자신 안의 이 최고의 직관을 깨우고자 의욕하는, 그 누구에 의해서든 발견되듯이. 이 근원적인 선은 순수한 연장(Ausdehnung)이다. 이는 시간과 공간에 공통적이며(Gemeinsam), 최초에 그로부터 차이와 그 이상의 규정이 출현한다. 이 근원적인 선은 공간을 전제하지 않으며, 오히려 공간이 그 선을 전제한다. 공간 안의 선들(즉, 공간 안에서 연장된 사물의 경계들)은 그와 완전히 다른 것이다[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가 여기서 논의하는 권역은 선들 안에서 생산되고 그럼으로써 어떠한 연장된 것(Ausgedehntes)이 된다.
(Ill) This sphere is something determinate, therefore, the act of producing it has its limits somewhere, and the product is interpreted by the understanding (the faculty of grasping things in a fixed manner) as a completed whole, and only thus is it actually posited (i.e. fixed and held fast).
(Ill) 이 권역은 어떠한 규정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의 생산(Produzieren)은 어딘가에 그것의 한계를 가지고 있고, 그 생산물은 지성[Verstand](사물들을 분명하게 파악하는(Festhalten) 능력) 속에서 완전한 전체로 파악되며(aufgefaßt), 오직 그럼으로써 확실하게(eigentlich) 정립된다(즉, 고정되고 유지된다).
The person becomes determinate by virtue of this product; he is the same person only insofar as this product remains the same, and he ceases to be the same person when the product ceases to be the same. But now, according to what has been said above, just as certainly as the person posits himself as free, so too must he posit himself as enduring. Thus he also posits the product as continually the same, as at rest, fixed, and unchanging, as a whole that is completed all at once. But extension that is at rest and made determinate once and for all is extension space. Thus that sphere is necessarily posited as a limited body that is spatially extended and that fills up its space. Moreover, in analysis, this sphere is necessarily found as just described. It is only analysis of this sphere that we can become conscious of, since the synthesis now being described (or the production of the sphere) is presupposed in order to make the analysis possible, which in turn is presupposed in order to explain the possibility of consciousness.
그 개인은 이 생산물에 의해 규정된다. 그는 오직 이 생산물이 동일한 것으로 남는 한에서만 바로 그 동일한 개인이며, 이 생산물이 동일하기를 중지할 때 그는 동일한 개인이기를 중지한다. 하지만 이제, 위에서 언급된 바에 따라, 그 개인이 그 자신을 자유로운 것으로서 정립하는 것이 분명하듯이, 또한 그는 그 자신을 지속하는 것(fortdauernd)으로서 정립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그는 또한 이 생산물을 계속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정지된 것, 고정된 것 그리고 불변하는 것으로서, 단번에 완전해진 전체로서 정립한다. 하지만 정지해 있는, 단번에 완전히 규정된 연장은 공간에서의 연장(Ausdehnung im Raume)이다. 그러므로 그 권역은 필연적으로 공간에서 연장되고 그것의 공간을 채우는 한계지어진 물체[사물, Körper]로 정립된다. 더하여, 우리가 유일하게 의식할 수 있는 분석에서, 이 권역은 필연적으로 그러한 것으로 발견된다. 지금 기술된 종합(혹은 이 권역의 생산)은 이 분석의 가능성을 위해, 그럼으로써 의식의 가능성을 설명하기 위해 전제되기 때문이다.
(IV) The material body we have derived is posited as the sphere of all the person's possible free actions, and nothing more. Its essence consists in this alone.
(IV) 우리가 도출한 물질적인 신체(Körper)는 그 개인의 모든 가능한 자유로운 행위의 범위[경계, 영역, Umfang]로, 그리고 그 이상은 아닌 것으로 정립된다. 그것의 본질은 오직 이 안에만 존립한다.
According to what has been said above, to say that a person is free means: the person, merely by constructing a concept of an end immediately becomes the cause of an object corresponding perfectly to that concept; the person becomes a cause simply and solely through his will as such: for to will means to construct a concept of an end. But the body just described is supposed to contain the person's free actions; thus it is in the body that the person would have to be a cause in the manner just described. Immediately by means of his will, and without any other means, the person would have to bring forth in this body whatever he wills; something would have to take place within this body, exactly as the person willed it.
위에서 언급한 것에 따라, 한 개인이 자유롭다는 것은 다음을 의미한다. 그 개인은, 순전히 목적의 개념을 구상함으로써 그 개념에 완벽하게 상응하는 어떠한 객관의 원인이 된다. 그 개인은 순전하게, 오로지 그러한 자신의 의욕에 의해 원인이 된다. 의욕한다는 것은 목적의 개념을 짓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기술된 신체는 그 개인의 자유로운 행위를 함유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 개인이 지금 기술된 방식으로 원인이 되는 것은 신체 내에서이다. 그의 의욕에 의해 직접적으로, 그리고 다른 어떠한 매개(Mittel) 없이, 그 개인은 그가 의욕하는 그 무엇이든 그 신체 안에 산출해야(hervorbringen) 할 것이다. 그 개인이 어떤 것을 의욕함에 따라, 그[신체] 안에 무엇인가가 일어나야만 할 것이다.
Furthermore - since the body thus described is nothing other than the sphere of the person's free actions, the concept of such a sphere is exhausted by the concept of the body, and vice versa. The person cannot be an absolutely free cause (i.e. a cause that has efficacy immediately through the will) except in the body; if a determinate act of willing is given, then one can infer with certainty that a particular change in the body corresponds to it. Conversely, no determination can occur in the body, except as a result of the person's efficacy; and from a given change in the body, one can infer with equal certainty that the person possesses a particular concept corresponding to such change. - This last proposition will acquire its proper determinacy and full meaning only later.
더하여 - 그러므로 기술된 신체가 그 개인의 자유로운 행위들의 권역 외에 다른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권역에 대한 개념은 신체의 개념으로 소진되며[소급되며, 환원되며, erschöpft], 그 역도 성립한다. 그 개인은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원인(즉, 의욕에 의해 직접적으로 작용성을 갖는 원인)일 수 없다. 신체 안에서만을 제외하고. 만약 규정된 의욕 행위가 주어지면, 그는 신체 안에서의 한 특정한 변화가 그에 상응한다는 것을 확실성을 갖고 추론할 수 있다. 역으로, 어떠한 규정도 신체 안에서 일어날 수 없다. 그 개인의 작용성의 결과로서 그러한 경우를 제외하고, 그리고 신체의 주어진 변화로부터, 그는 그 개인이 그러한 변화에 상응하는 한 특정한 개념을 소유한다는 것을 동일한 확실성을 가지고 추론할 수 있다. – 이 마지막 명제는 이후에야 그의 적절한 규정성(Bestimmtheit)과 완전한 의미를 얻을 것이다.
(V) Now how and in what manner are concepts supposed to be expressed in a material body by means of change within it? Matter, by its very essence, is imperishable; it cannot be annihilated, nor can new matter be created. For this reason, the concept of change in the posited body could not apply to matter. Furthermore, the posited body is supposed to endure without interruption; thus the same pieces of matter are supposed to remain together and continuously constitute the body and yet, this body is also supposed to be changed by each of the person's acts of will. How, then, can it endure without interruption and still be (as we are to expect) continually changed?
(V) 이제 어떻게 그리고 무슨 방식으로 개념들이 물질적인 신체 안에서 발현되어야(ausgedrückt) 하는가? 물질은, 바로 그것의 본질에 따라, 소멸 불가능하다[영원하다, unvergänglich]. 그것은 무화될(vernichtet) 수도, 새롭게 산출될 수도 없다. 이러한 이유로, 정립된 신체 안에서의 변화의 개념은 물질에 적용될 수 없다. 더하여, 정립된 신체는 중단 없이(ununterbrochen) 지속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 동일한 물질의 부분들은 함께 남아 있어야 하고 계속적으로 그 신체를 구성해야 한다. 하지만, 그 신체는 또한 그 개인의 각 의욕 행위에 의해 변화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것은 중단 없이[개입 없이, 방해 없이, ununterbrochen] 지속하고, 여전히 (우리가 기대하듯이) 계속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가?
The body is matter. Matter is infinitely divisible. The body, i.e. the material parts in it, would remain and yet the body would be changed, if the parts changed their relation to one another - i.e. their relative position. The relation of the manifold parts to one another is called form. Thus the parts, insofar as they constitute the form, are supposed to remain; but the form itself is supposed to be changed. - (I say, "insofar as they constitute the form": for particular parts could continually separate themselves from the body without thereby harming the permanence required of such a body, provided only that those parts are replaced by others in the same, undivided moment.) - Thus: motion of the parts, and thereby change in the body's form, comes about immediately by means of the person's concept.
신체는 물질이다. 물질은 무한하게 분할 가능하다. 만약 [신체의] 부분들 자체가 상호간의 관계를, 즉 그들의 서로에 대한[상대적인, zueinander] 위치를 변경한다면(veränderten), 신체, 즉 그 안의 물질적인 부분들은 남아 있지만, 그럼에도 그 신체는 변화할 것이다. 다양체(Mannigfaltig) [부분들]의 서로에 대한 관계는 형식(Form)이라 불린다. 그러므로 부분들은, 그들이 형식을 구성하는 한, 남아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형식 그 자체는 변화해야(veränderten) 한다. – (그들이 형식을 구성하는 한, 이라고 말함은 만약 그 부분들이 동일한, 분할되지 않은(ungeteilten) 계기[순간, Momente] 속에서 다른 것들[부분들]에 의해 대체된다면(ersetzt), 특정한 부분들이 계속적으로[끊임없이, unaufhörlich] 그 신체로부터 분리될(abtrennen) 수 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기술된 신체의 요구된 존속성[영속(성), Dauer]이 손상되지(beschädigt) 않으면서.) - 그러므로, 부분들의 운동(Bewegung der Teile)은, 그리고 그에 의한 신체의 형식 변화(Veränderung der Form)는, 그 개인의 개념에 의해 직접적으로 발생한다[초래된다].
(VI) In the body we have been describing, the person's concepts of causality are expressed by means of change in the position of the body's parts in relation to one another. These concepts, i.e. the person's acts of willing, can be infinitely varied; and the body, which comprises the sphere of the person's freedom, may not restrict them. Thus each part would have to be able to change its position in relation to the others, i.e. each would have to be able to move while all the others remain at rest; each part, ad infinitum, would have to have its own movement, attributed only to it. The body would have to be configured such that it would always be up to freedom to think a part as larger or smaller, as more complex or simpler; furthermore, it would always be up to freedom to think any set of parts as a single whole, and thus as itself one part in relation to a larger whole; and conversely, to divide up again everything that is thought as a unity in this way. Determining what is to be a part at any given moment would have to depend on a concept. Furthermore, if something is thought as a part, it would have to have its own characteristic movement, which would, once again, depend on a concept. -Something that is thought as an individual part in this relation is called a member; it must, in turn, contain members; and within each of these there must, once again, be members, and so on ad infinitum. The question of what is to be regarded as a member at any given moment must depend on the concept of causality. The member is in motion, to the extent that it is regarded as a member; what is then the whole in relation to such a member is at rest: what is a part in relation to that member is likewise at rest, i.e. it has no movement of its own, though it does indeed have movement in common with the whole to which it currently belongs (i.e. the member). This kind of bodily composition is called articulation. The body we have deduced is necessarily articulated, and must be posited as such.
(VI) 기술된 신체 안에서, 그 개인의 인과성(Kausalitätsbegriffe) 개념(들)은 그 신체의 부분들의 서로에 대한(gegeneinander) 위치(Lage) 변화에 의해 표현된다. 이러한 개념들, 즉 그 개인의 의욕(Wollen)은 무한하게 다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개인의 자유의 권역을 함유하는[포함하는, enthält] 그 신체는, 그들을 억제하지[억압하지, hemmen]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각 부분은 다른 부분과 관련하여 그것의 위치를 변화시킬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즉, 각 부분은 다른 부분들이 정지 상태일 때 운동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각 부분들에게는 무한하게, 고유한 운동이 귀속되어야만(zukommen) 할 것이다. – 신체는 항상 한 부분을 더 크거나 혹은 작은 것으로, 복합적이거나(zusammengesetzter) 단순한 것으로(einfacher) 사유할 수 있는, 다시 말해(hinwiederum), 각 부분들의 집합(Menge)을 하나의 전체로 사유하고, 그럼으로써 그 자체를 보다 큰 전체와의 연관에서 하나의 부분으로 사유할 수 있으며 역으로 통일된 것으로(als Eins) 사유된 것을 다시 나눌 수 있는(teilten) 자유에 의존하도록(abhinge) 설정되어야(eingerichtet) 할 것이다. 어떠한 주어진 순간에[매번, jedesmal] 무엇이 한 부분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은 오직 개념에만 의존하여야 할 것이다. 더하여, [그로써, daraus] 만약 어떤 것이 한 부분으로 사유된다면, 그것의 독특한(eigentümliche) 운동이 따라 나와야만 할 것이며, 그것은 또다시 개념에 의존할 것이다. - 이러한 관계에서, 한 개별적인 부분으로 사유되는 어떤 것은 성분[일원, Glied]이라 불린다. 그것 안에는 다시(wieder) 성분들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들 각각 안에는 다시 성분들이 있어야 하며, 이렇게 무한히 계속된다. 무엇이 어떠한 주어진 순간에[매번, jedesmal] 구성 부분으로서 간주되어야 하는지는 인과성 개념에 의존해야만 한다. 성분은 그것이 그러한 것[성분]으로 간주되는 한, 운동 속에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성분과의 연관(Beziehung) 속에 있는 전체는 정지 상태이다. 그 성분과의 연관 속에 있는 부분은 마찬가지로 정지 상태이다, 즉, 그것은 어떠한 고유한 운동도 가지고 있지 않다. 물론 그것이 현재 속한 (즉, 그 성분) 전체와 공동체적인[공동의, gemeinschaftlich] 운동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신체의 이러한 성질(Beschaffenheit)은 표현(Artikulation)이라 불린다. 연역된 신체는 필연적으로 표현되며, 그러한 것으로[표현되는 것으로] 정립되어야만 한다.
A material body {Körper] such as the one described, whose permanence and identity we tie to the permanence and identity of our own personality - a body we posit as a closed, articulated whole, and within which we posit ourselves as a cause that acts immediately through our will - is what we call our human body [Leib]; and thus what was supposed to be proved has now been proved.
기술된 것과 같은, 그것의 영속성과 정체성을 우리 자신의 인격성(Persönlichkeit)의 영속성과 정체성에 결합하는 한 신체, 우리가 하나의 닫힌(geschlossenes), 표현되는 전체로 정립하고, 그 안에서 우리가 우리의 의욕에 의해[의욕을 통해] 직접적으로 우리 자신을 원인으로 정립하는 한 신체는 우리가 우리의 몸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증명되어야 할 것은 증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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